
국기원에 없는 명예 10단, 누가 만들었는가
-교황 레오 14세 명예 10단 수여가 남긴 제도적 의문
남궁윤석 / 한국태권도신문 대표 겸 발행인
세계태권도연맹(WT) 조정원 총재가 지난 6월 3일 바티칸에서 교황 레오 14세에게 태권도 명예 10단증을 수여했다.
태권도의 평화 정신과 인도주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난민 지원 활동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한 행사였다는 점에서 그 취지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태권도가 스포츠를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 실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의미 있는 자리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태권도계에 적지 않은 의문을 남겼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태권도 단증 발급의 권한과 권위는 세계태권도연맹이 아니라 국기원에 있기 때문이다.
국기원은 세계 태권도의 품, 단 체계를 총괄하는 본부이며 WT 또한 국기원 단증을 기준으로 세계선수권대회와 각종 국제대회 참가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태권도 단증 제도의 근간은 국기원에 있다.
그런데 이번에 수여된 것은 명예 10단이다. 공개된 행사 사진을 보면 교황에게 전달된 명예 10단 수여패 상단에는 WT 로고와 국기원 로고가 함께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국기원 단증 형태와는 다른 기념패 형식이지만 세계태권도연맹과 국기원이 함께 상징적으로 참여한 수여물로 비쳐질 수 있는 모습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태권도인들의 궁금증이 시작된다.
국기원 심사규정에는 명예단 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명예단은 1단부터 9단까지 규정되어 있을 뿐 명예 10단은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국기원 심사규정 제4조(품·단의 위계)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품의 위계는 1품부터 4품까지이며, 단의 위계는 1단부터 9단까지로 한다. 단, 명예단은 1단부터 9단까지, 추서단은 5단부터 10단까지로 한다.”
즉 현행 국기원 규정상 명예단은 최고 9단까지만 존재한다. 10단은 생존자에게 수여하는 명예단이 아니라 추서단에 한하여 인정되는 위계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번 교황 레오 14세 명예 10단은 세계태권도연맹의 요청에 따라 국기원에서 단번호를 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사실이 맞다면 이는 단순히 WT가 자체적으로 부여한 명예 칭호가 아니라 국기원이 공식적으로 관여한 사안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태권도인들이 궁금해하는 핵심은 더욱 분명해진다. 현행 국기원 심사규정상 명예단은 9단까지인데 명예 10단 단번호는 어떠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발급된 것인가.
이 결정은 국기원장의 권한에 따른 것인가. 이사회 의결이나 관련 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규정이나 특별한 법적 근거가 존재하는 것인가.
규정은 조직을 구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세계 수많은 태권도인들은 수년, 수십 년에 걸친 수련과 심사를 통해 단을 취득한다. 최고단에 오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존중받는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규정에 없는 단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다면 태권도 단증 체계의 권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번 행사에서 또 하나 많은 태권도인들이 주목한 장면은 국기원장의 모습이었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조정원 총재와 교황이 행사의 중심에 서 있는 동안 국기원장은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이번 행사가 WT 주관 행사였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태권도 단증 제도의 최고 권위를 대표하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보다 상징적인 역할을 기대했던 태권도인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긴 장면이기도 했다.
국기원은 WT의 산하기관이 아니다. 국기원은 세계 태권도 단증과 기술 체계의 본부이며 WT는 국제경기단체다. 양 기관은 역할과 기능이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협력해야 할 관계다. 어느 한 기관이 다른 기관의 권한과 상징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교황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교황 레오 14세에 대한 존경과 인도주의 활동에 대한 감사 역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태권도 제도의 원칙과 권위에 관한 것이다.
국기원과 WT는 태권도인들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이번 명예 10단은 누구의 명의로 수여된 것인가. 어떠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결정되었는가. 국기원이 발급한 단번호의 법적 성격은 무엇인가. 국기원의 공식 단증 체계에 포함되는 것인가. 앞으로도 동일한 사례가 가능하다는 의미인가.
이 질문들은 특정 인물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태권도 제도의 신뢰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이다. 태권도의 미래는 화려한 행사나 상징적인 수여식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원칙과 규정을 존중할 때 비로소 세계 태권도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53년 동안 세계 태권도의 중심으로 인정받아 온 국기원의 권위 역시 규정과 절차에 대한 신뢰 위에서 유지되어 왔다.
만약 명예 10단 발급에 정당한 규정과 절차가 존재한다면 그 근거를 공개하면 될 일이다. 반대로 현행 규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별한 결정이었다면 그 경위와 근거를 태권도인들에게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국기원과 WT의 책임일 것이다.
지금 태권도인들이 바라는 것은 논란에 대한 침묵이 아니다. 명예 10단 단번호가 어떠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발급되었는지에 대한 투명하고 책임 있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