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7 (월)

  • 흐림동두천 23.3℃
  • 구름많음강릉 23.0℃
  • 구름많음서울 24.0℃
  • 대전 23.5℃
  • 흐림대구 22.5℃
  • 울산 22.3℃
  • 구름많음광주 24.5℃
  • 부산 22.6℃
  • 맑음고창 26.3℃
  • 구름많음제주 26.7℃
  • 흐림강화 25.0℃
  • 구름많음보은 22.5℃
  • 구름많음금산 23.2℃
  • 구름많음강진군 25.5℃
  • 흐림경주시 22.8℃
  • 흐림거제 21.7℃
기상청 제공

대한민국 태권도의 세계화를 이끈 거목, 안경원(安慶源) 9단 대사범

 

[한국태권도신문] 태권도의 역사는 수많은 선구자들의 헌신으로 이어져 왔다. 오늘날 태권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세계인이 함께하는 무도로 자리 잡기까지는 낯선 땅에서 태권도의 씨앗을 뿌리고 평생을 바친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발자취는 화려한 조명을 받지 않았지만 세계 태권도의 뿌리에는 언제나 그들의 땀과 열정이 스며 있다.

 

안경원(Kyongwon Ahn) 9단 대사범은 바로 그런 시대를 대표하는 개척자이다.

 

그는 미국에서 도장을 운영한 한 명의 사범이 아니었다. 태권도를 교육으로 정착시키고 미국 태권도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국제 태권도 행정과 올림픽 무대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지도자였다. 그의 삶은 한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대한민국 태권도가 세계로 뻗어 나간 역사와 함께해 온 여정이라 할 수 있다.

 

1937년 8월 11일 태어난 안경원 대사범은 강원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62년 졸업하였다. 법률을 공부한 그는 안정된 길보다 태권도의 미래를 선택했다. 1957년부터 국내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태권도의 정신과 교육적 가치를 전하던 그는, 대한민국 태권도가 세계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1967년 미국행을 결심했다.

 

당시 미국에서 태권도는 생소한 무도였다. 한국이라는 나라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언어와 문화, 생활환경 모두가 낯선 곳에서 태권도를 알린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보다 가능성을 먼저 보았다. 신시내티대학교에 무도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미군 학군단(ROTC) 학생들을 지도하며 태권도를 단순한 무술이 아닌 인성교육과 자기수양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후 그의 활동은 미국 태권도의 역사가 되었다.

 

1974년 미국 AAU 태권도위원회 창립에 참여하며 미국 태권도 행정의 기틀을 세웠고 오하이오 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조직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1978년에는 승급 심사 기준과 운영 규정을 마련하여 미국 태권도의 심사제도를 표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미국 태권도 행정체계의 초석이 된 여러 제도에는 그의 철학과 노력이 담겨 있다.

 

안경원 대사범의 진가는 지도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행정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미국태권도연합(USTU) 부회장을 거쳐 1986년부터 1992년까지 회장을 맡으며 미국 태권도가 올림픽 체계 안에서 국가대표 관리단체로 자리 잡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미국 태권도의 경쟁력을 높인 것은 물론 국제 태권도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세계 태권도가 올림픽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그의 이름은 빼놓을 수 없다. 1986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제1회 월드컵 태권도대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국제대회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세계태권도연맹(WTF) 집행이사회 위원과 법률·규정위원장을 역임하며 국제 태권도 제도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또한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이사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태권도가 국제 스포츠 사회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태권도 시범경기에서는 미국 국가대표팀 단장으로 참가해 역사의 현장을 함께했다.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국제위원회 활동과 올림픽 경기 중재위원회 활동 역시 태권도가 세계 스포츠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1990년 그는 국기원으로부터 태권도 9단 심사에 합격했으며 같은 해 세계태권도연맹 국제심판 자격도 취득했다. 이후에도 국기원 국제자문위원회와 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태권도 교육의 발전과 후진 양성에 지속적으로 헌신했다.

 

그러나 안경원 대사범의 가장 큰 업적은 직책이나 훈장이 아니었다.

 

1957년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태권도복을 입고 도장을 지키며 수련생을 길러낸 삶 자체가 그의 가장 큰 업적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그의 지도는 미국으로 이어졌고 그가 직접 지도한 수련생은 약 50만 명에 이르며 1,000명 이상의 검은띠 지도자를 배출했다. 그의 제자들은 다시 세계 각국에서 태권도를 보급하며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헌신은 국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김운용 총재로부터 두 차례 태권도 발전 공로상을 받았고 팬아메리칸게임 공로상, 바르셀로나올림픽 공로상, 대한민국 체육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안경원 대사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화려한 수상 경력 때문이 아니다. 그는 태권도가 세계인의 무도로 성장하는 과정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길을 닦은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태권도가 사랑받는 것은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이라는 무대만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낯선 땅에서 태권도를 처음 알리고 조직을 만들고 제도를 세우며 후학을 길러낸 선구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경원 9단 대사범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그는 태권도를 가르친 지도자였고 미국 태권도의 기틀을 세운 개척자였으며 국제 태권도의 제도화를 이끈 행정가였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태권도의 정신과 가치를 세계 곳곳에 뿌리내리게 한 교육자였다.

 

한 사람의 삶은 곧 한 시대의 역사이다. 안경원 대사범의 삶이 바로 그러하다. 그의 발걸음은 대한민국 태권도가 세계를 향해 걸어온 여정과 함께했으며 그의 업적은 세계 태권도 발전사 속에서 오래도록 빛날 소중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프로필 사진
남궁윤석 대표 겸 발행인

○약 력
-태권도 9단
-태권도장 운영(36년)
-국기원 감사(전)
-국기원 상벌위원장(전)
-태권도9단회 상임이사(전)
-서울특별시 은평구태권도협회 2대, 3대 회장
-서울특별시 은평구생활체육회 2대, 3대 회장
-서울특별시 은평구의회 4대, 5대 의원(행정복지위원장. 운영위원장. 부의장)

태권도 인으로서 국기원 및 태권도 관련 단체를 비롯한 각 분야별 또는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우수사례는 물론 사건, 사고 등을 전 세계 태권도인과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책임과 소신으로 거침없이 집중 취재하고자 노력합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