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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민(曺相敏) 원로, 브라질 태권도의 문을 연 세계화의 선구자

 

[한국태권도신문] 오늘날 태권도는 세계 200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수련되는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유산이자 세계인이 함께하는 무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낯선 땅에서 오직 태권도에 대한 신념 하나로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수많은 선구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중심에는 남미 브라질에 태권도의 뿌리를 내리고 오늘날 브라질 태권도의 초석을 세운 조상민(曺相敏) 원로가 있다.

 

1938년 전라남도에서 태어난 조상민 원로는 청도관 계열에서 태권도를 수련했으며 1960년대 국제태권도연맹(ITF) 수석사범으로 활동하면서 해외 파견 사범 교육, 태권도 기술 보급, 교본 편찬, 교육영화 제작 등 태권도 세계화의 기초를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태권도가 아직 국내에서도 체계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그는 이미 세계를 무대로 태권도의 미래를 준비한 선구자였다.

 

1970년 브라질로 건너간 조상민 원로는 아무런 기반도 없는 환경에서 태권도 보급을 시작했다. 그는 브라질 최초로 '태권도(Taekwondo)' 간판을 내걸고 도장을 개관하며 본격적인 보급에 나섰다. 당시 브라질에서는 가라데의 인지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태권도라는 이름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가라데 간판을 걸어야 한다"는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자신은 가라데를 가르치러 온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를 전하기 위해 브라질에 왔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조상민 원로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태권도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 상파울루 경찰 특수기동대(DOPS), 경찰사관학교, 마우아공과대학교 등 다양한 기관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며 무도로서의 우수성과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브라질태권도협회와 상파울루태권도연맹을 이끌며 태권도가 브라질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의 확고한 신념은 결국 브라질에서 태권도라는 이름이 당당하게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의 활동은 단순한 지도에 그치지 않았다. 브라질 국가대표 감독과 국제대회 대표를 맡아 브라질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였으며 1975년 제2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비롯해 세계선수권대회, 세계무도대회, 전국체육대회, 세계대학태권도선수권대회 등 수많은 국제무대에서 브라질을 대표하며 대한민국 태권도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조상민 원로의 공적은 브라질과 대한민국 양국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브라질 체육부 장관 표창, 상파울루 경찰국장 표창, 브라질 사회·문화훈장,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 표창,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표창, 대한체육회 공로패, 서울특별시태권도협회 표창 등 수많은 포상은 그의 헌신이 국경을 넘어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록은 한 사람의 영예를 넘어 대한민국 태권도가 세계 속에서 인정받는 과정의 역사이기도 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하여 태권도를 매개로 대한민국과 브라질을 잇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에도 미국과 중남미 각국에서 태권도 보급과 문화교류에 헌신하며 국기원 태권도 9단 고단자회, 태권도진흥재단, 브라질과 볼리비아 태권도 단체 등으로부터 감사패와 공로패를 받는 등 평생을 태권도와 함께 걸어왔다.

 

조상민 원로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브라질 태권도의 뿌리를 만든 데 있다. 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 수많은 한국 사범들이 브라질에 진출했고 브라질 전역에 태권도가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오늘날 브라질 태권도계를 이끌고 있는 수많은 지도자와 선수들은 그가 일군 토대 위에서 성장한 세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의 뒤를 이어 김용민 사범은 브라질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브라질 태권도의 발전을 이끌었고 김요준 사범 역시 현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조상민 원로의 정신과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이는 한 사람의 헌신이 한 나라의 태권도 역사를 만들고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이다.

 

 

오늘날 브라질은 세계태권도연맹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태권도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성장의 출발점에는 아무런 기반도 없는 낯선 이국땅에서 대한민국 국기의 이름을 지키며 태권도의 깃발을 가장 먼저 세운 조상민 원로의 불굴의 도전정신이 있었다.

 

조상민 원로는 단순히 태권도를 가르친 사범이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를 세계에 심은 문화사절이었고 태권도의 이름과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낸 개척자였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선택했던 그의 신념은 오늘날 브라질 태권도의 역사와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 태권도의 위상을 높인 원동력이 되었다.

 

현재 조상민 원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후학들과 교류하며 평생을 바친 태권도의 가치와 정신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그의 삶은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태권도를 보급하는 후배 사범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태권도의 세계화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조상민 원로를 빼놓고 논할 수는 없다. 그는 브라질에 태권도를 전한 지도자가 아니라 한 나라의 태권도 역사를 새롭게 시작한 개척자였으며 대한민국 국기의 이름을 세계에 뿌리내린 선구자였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속의 태권도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조상민 원로와 같은 선구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브라질 태권도의 역사이자 한국 태권도 세계화의 역사이며 대한민국 태권도인이 오래도록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조상민 원로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한 개인의 업적을 넘어 대한민국 태권도가 세계인의 무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역사이다. 그의 이름은 브라질 태권도의 개척자이자 한국 태권도 세계화의 선구자로 대한민국 태권도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프로필 사진
남궁윤석 대표 겸 발행인

○약 력
-태권도 9단
-태권도장 운영(36년)
-국기원 감사(전)
-국기원 상벌위원장(전)
-태권도9단회 상임이사(전)
-서울특별시 은평구태권도협회 2대, 3대 회장
-서울특별시 은평구생활체육회 2대, 3대 회장
-서울특별시 은평구의회 4대, 5대 의원(행정복지위원장. 운영위원장. 부의장)

태권도 인으로서 국기원 및 태권도 관련 단체를 비롯한 각 분야별 또는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우수사례는 물론 사건, 사고 등을 전 세계 태권도인과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책임과 소신으로 거침없이 집중 취재하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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