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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 원로 “태권도라는 이름을 미국에 심다”

- 미국 태권도 개척자, 도산체육관 김용길 총관장

 

[한국태권도신문]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LA)에 태권도의 씨앗이 막 뿌려지기 시작하던 1960년대 후반. 당시 미국 사회에서 태권도는 아직 낯선 이름이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 무술을 ‘코리안 가라데(Korean Karate)’ 정도로 인식했고, 태권도라는 고유 명칭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 혼란의 시대에 “태권도는 태권도여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미국 사회에 정식 명칭과 철학을 뿌리내린 인물이 있다. 바로 미국 LA 도산체육관의 김용길 총관장이다. 그는 오늘날 미국 태권도사의 산증인이자, 태권도의 세계화 초창기를 몸으로 개척한 원로 사범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Anaheim)에서 개최된 2025 국기원 세계태권도한마당 행사에서 김 총관장은 미국 태권도 개척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 공로로 개척자상을 받으며 반세기가 넘는 헌신과 활동이 주목을 받았다.

 

다만 이후 국기원 측은 공식 상훈 체계에 ‘태권도 미국 개척자상’ 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상의 공식 승인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도 공식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69년, 김용길 총관장은 유학길에 올라 미국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당시 그는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대학원에 입학하여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태권도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했다. 대부분의 도장은 ‘Korean Karate’ 혹은 단순히 ‘Karate’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김 총관장은 한국 무도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TAEKWONDO’라는 명칭을 전면에 내걸고 그 아래에 “Korean Art of Self Defense”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름부터 바로 세우겠다는 철학이었다.

 

김 총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 USC 모던댄스 연습실을 빌려 수련을 시작했는데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몰려왔습니다. 모두 태권도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지만, 오히려 그 생소함이 호기심이 되었습니다.”

 

 

이후 USC 학보와 지역사회에 태권도가 소개되며 큰 반응이 일어났고,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태권도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김 총관장의 태권도 여정은 미국 이전 한국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1963년 서울 명동 대성빌딩 내 흥사단 본부에서 도산체육관을 개설하며 본격적인 태권도 지도 활동에 나섰다. 이후 1967년에는 광화문으로 도장을 이전하며 서울 도심 태권도 보급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1968년 봄에는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던 김용채 회장 시절, 대한태권도협회 주관으로 새로운 품새(형) 체계를 보급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당시 전국 도장 사범들을 대상으로 한 신형(新形) 강습회가 김 총관장의 도산체육관에서 열렸으며 전국 각지의 사범들이 일정 기간 순차적으로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품새 체계를 익혔다고 전해진다.

 

김 총관장은 유급자 팔괘 품새와 유단자 품새인 고려, 금강 등을 직접 지도하며 품새 체계 정립과 전국 보급에도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같은 해 말,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태권도 개척의 길에 나섰다.

 

 

1972년 김 총관장은 LA 노스 버몬트 지역에 ‘도산체육관’을 설립했다. 단순한 체육관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과 공동체 문화를 함께 전하는 공간이었다.

 

도산체육관이라는 이름 역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김 총관장은 오랜 기간 흥사단 활동에 참여하며 총무와 미주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미주 한인사회 교육과 민족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는 매주 토요일 흥사단 단소에서 태권도를 무료로 지도했고 1973년 개교한 한글학교 ‘무궁화학원’에서는 20년 가까이 태권도 교사로 활동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교부장관상과 외무부장관상, 체육부장관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특히 당시 도산체육관은 단순한 무도장이 아니었다. 한인사회 시국강연회와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이었고, 이민자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까지 수행했다.

 

 

김용길 총관장의 업적 가운데 특히 주목받는 부분은 단계별 색 띠 중심의 승급 체계를 보다 체계화한 점이다. 당시 미국 각 지역 도장들은 제각각 다른 급수 체계를 사용하고 있었고 김 총관장은 이를 보다 국제적이고 통일된 방식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체계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태권도장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 태권도가 국제 스포츠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교육 표준화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권도의 세계화와 올림픽 종목 채택 과정에서도 이러한 체계화 작업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김 총관장은 1970년대부터 약 25년 동안 미국 서부지역 대표 무술대회 가운데 하나였던 ‘Pacific Taekwondo Championships’를 개최하며 미국 태권도 교류의 중심 역할을 했다. 당시 대회에는 한국 사범들뿐 아니라 미국, 중남미, 아시아권 수련인들까지 참가하면서 태권도 국제 교류의 장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원로 사범과 관장들이 김 총관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김용길 총관장은 여전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태권도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국기원과 원로 사범 네트워크 활동, 태권도 9단 모임 참여, 후진 양성 등 그는 지금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삶은 단순히 한 명의 사범 인생이 아니라, “태권도라는 이름”이 세계 속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 수천만 명이 ‘Taekwondo’라는 이름으로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미국 사회에 처음 제대로 심기 위해 노력했던 선구자들의 헌신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잊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용길 총관장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것은 곧 한국 무도의 자존심을 세계에 세운 개척자의 역사다.

 

 

 

프로필 사진
남궁윤석 대표 겸 발행인

○약 력
-태권도 9단
-태권도장 운영(36년)
-국기원 감사(전)
-국기원 상벌위원장(전)
-서울특별시 은평구태권도협회 2대, 3대 회장
-서울특별시 은평구생활체육회 2대, 3대 회장
-서울특별시 은평구의회 4대, 5대 의원(행정복지위원장. 운영위원장. 부의장)

태권도 인으로서 국기원 및 태권도 관련 단체를 비롯한 각 분야별 또는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우수사례는 물론 사건, 사고 등을 전 세계 태권도인과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책임과 소신으로 거침없이 집중 취재하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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