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태권도신문] 세계태권도 창무관을 전통과 정신이 살아있는 도장으로 끊임없는 열과 성을 다하여 이끌어 오면서 자기 절제와 책임을 중요시하며 창무관 운영 철학의 중심에 두고 있는 김중영 총관장을 영등포 사무실에서 아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만났다.
김중영 총관장은 1942년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53년 6.25 동란이 끝난 후 12살 나이에 일찌감치 서울로 상경하였으며 중단된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중학교 나이부터 책 장사를 하면서 학비를 마련하고 태권도는 물론 책과의 인연으로 고등학교 진학 후 어린 나이에 오성출판사의 사장이 되면서 자수성가한 태권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창무관의 철학과 기술을 계승하는 지도자
김중영 총관장은 세계태권도 창무관 제4대 총관장으로서 창무관의 철학과 기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창무관은 태권도 5대 관 중 하나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도장이다. 그는 "태권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창무관을 정신과 기술이 살아 숨 쉬는 도장으로 이끌어왔다.
국기원 교본 편찬과 오성출판사의 기여
김중영 총관장은 오성출판사 대표로서 국기원 교본 편찬 작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교본은 태권도의 기술체계를 정립하고, 전 세계 태권도인들에게 일관된 교육적 기준을 제공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김 총관장은 오성출판사를 통해 태권도 철학과 기술의 체계화, 출판과 교육의 접점을 이루며, 태권도의 글로벌 보급에 큰 기여를 했다. 오성출판사는 태권도의 전통을 보존하고, 체계적인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출판사로 자리매김하며, 김중영 총관장은 이를 통해 태권도의 문화를 널리 퍼뜨리고 있다.
국기원 기술고문 및 심사제도 발전
김 총관장은 국기원 교본 편찬과 함께 국기원 기술심의회 심사위원장 10년의 경험과 현재 기술고문으로서 태권도의 기술체계 정립과 심사제도의 표준화와 국제화를 이끌었다. 그가 이끄는 심사제도는 공정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태권도 기술을 평가하고,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태권도 규범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태권도 9단회 회장으로서의 역할
김중영 총관장은 전, 태권도 9단회 회장으로서 지난 임기 동안 태권도 9단으로 구성된 회원들의 품격을 정립하는데 노력하였고 연간 사업 운영과정에서 회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단자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태권도를 통해 품위를 지키는 인격자여야 한다." 는 그의 철학은 많은 태권도 지도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서울스포츠대학원대학교 이사장, 체육 교육의 미래를 설계하다
김중영 총관장은 서울스포츠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고 이사장으로서 체육 교육의 질적 향상과 전문 인재 양성에 헌신한 경험이 있다. 체육 전문 교육의 기반을 다지며, 태권도 및 스포츠 교육 분야의 발전을 이끌어 왔지만 경영의 어려움으로 대학의 문을 닫아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전, 회장으로서 체육 및 태권도 관련 자료의 체계적 보급에도 큰 역할을 하였으며 문무를 겸비한 리더로서 태권도의 전파와 체육계 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태권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
김중영 총관장은 수십 년간 해외 방문으로 태권도 심사 및 기술지도를 통해 태권도의 세계화를 이끌어 온 외교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각국 태권도인들 사이에서 태권도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에도 그의 활동은 태권도의 글로벌 영향력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문화의 세계적 태권도 시장성 확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태권도 지도자
김중영 총관장은 태권도계의 미래 100년을 위해 준비하는 지도자로서,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태권도를 단순한 무술이 아닌, 사람을 세우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철학적 실천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은 물론 태권도 창무관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전파하고 관리 운영하는데 헌신하고 있다.
김중영 총관장의 업적과 리더십은 태권도의 세계화뿐만 아니라, 체육 교육과 문화 교류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삶과 철학은 태권도계의 귀감이자 미래의 이정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