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무도인에서 세계 태권도 개척자로…조용대 대사범의 70년 무도 인생
-고려대학교 공수도부 시절부터 일본 원정까지…역사자료로 확인하는 청년 무도인의 발자취
-호주 태권도 조직 통합과 시드니올림픽, 봉술·검술 연구에 이르기까지
[한국태권도신문] 한국 태권도가 오늘날 세계적인 무도로 성장하기까지는 해외의 낯선 환경에서 태권도의 뿌리를 내린 선구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호주에서 오랜 세월 활동해 온 조용대 대사범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태권도 인생은 단순히 해외에서 도장을 운영한 지도자의 경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대학 무도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로 출발해 해외 지도자와 국가대표팀 코치, 태권도 단체장으로 활동했으며, 이후에는 새로운 무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데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특히 이번에 확보한 1950~1960년대 신문기사와 대학 공수도부 관련 자료는 조 대사범이 해외로 진출하기 이전부터 무도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다. 신문에 이름을 남긴 청년 무도인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한국의 대학 무도계에서는 공수도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 고려대학교에서 활동하던 조용대 대사범은 각종 교내외 대회에 참가하며 실력을 쌓았다. 제공된 당시 영문 신문에는 고려대학교의 대학 간 공수도 경기 소식이 실려 있다. 기사에는 국문학과 3학년이었던 조용대가 개인전에 참가한 7명의 선수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다른 옛 신문자료에는 고려대학교 공수도부 임원 선출과 관련해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는 그가 선수 활동뿐 아니라 대학 무도부 운영에도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1960년에는 고려대학교 공수도부의 일본 원정 관련 기사와 기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일본 원정은 당시 한국 대학 무도인들이 해외 선수들과 교류하고 자신들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였다. 이러한 기록들은 조 대사범이 호주에 진출하기 이전부터 선수와 대학 무도부 지도자로서 경험을 쌓아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 호주 태권도의 기반을 세우다 1967년 홍콩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한 조 대사범은 1970년 호주 멜버른으로 진출했다. 현지 스포츠센터와 모나쉬대학교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기 시작했고, 1972년에는 조스 태권도 아카데미를 개관했다. 이듬해에는 라트로브대학교 태권도부를 창설하며 대학을 중심으로 태권도 보급에 나섰다. 1976년 제2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호주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으며, 1978년에는 호주 태권도연맹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여러 조직으로 나뉘어 있던 호주 태권도계의 통합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7년 호주 태권도 유니온 회장에 이어 1995년 임시 통합단체 회장, 1998년 통합 태권도협회 회장을 맡으며 조직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활동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으로 이어졌다. 태권도가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메달 종목이 된 역사적인 대회에서 그는 호주 태권도협회 회장으로서 올림픽 관련 업무에 참여했다. 호주는 이 대회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각각 하나씩 획득했다. 이는 선수와 지도자, 협회 관계자들이 함께 이루어 낸 성과였으며, 조 대사범에게도 오랜 태권도 활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태권도 봉술과 검술, 새로운 무도체계에 도전하다 조 대사범의 활동은 태권도 보급과 행정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0년부터 태권도 봉술을 연구하기 시작해 2004년 봉술체계를 완성했고, 2007년 관련 교재를 발간했다. 이후 검술과 쌍봉술로 연구 영역을 확대하면서 태권도 기본동작과 무기술을 접목한 독자적인 수련체계를 발전시켰다. 2010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태권도 봉술 시범을 선보였으며, 2022년에는 호주 태권도 봉술연맹을 호주 태권도·무기술연맹으로 개칭했다. 2023년에는 봉술과 검술, 쌍봉술 관련 전자책을 발간해 오랜 연구 성과를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그의 무기술 연구는 태권도의 실전성과 수련 영역을 확대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이는 국기원 공인 품새나 공식 승단체계와는 별개로 개발한 독자적인 무도체계다. 세계 태권도 발전에 남긴 발자취 조 대사범은 태권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여러 상을 받았다. 제공된 경력자료에 따르면 2000년 호주 정부의 체육 관련 공로 표창을 받았으며, 2003년 세계태권도연맹 창립 30주년 공로상, 2006년 국기원 자랑스러운 태권도인상 해외 부문, 2008년 국기원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국제 품새대회 심판과 국가대표팀 단장, 기술위원장, 고단자 기술자문단 의장 등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며 국제 태권도 발전에 참여했다. 그가 남긴 기록은 개인의 수상 경력을 넘어 한국 태권도의 해외 진출과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전해야 할 때 조용대 대사범이 걸어온 길은 한국의 대학 무도계에서 시작해 홍콩과 호주를 거쳐 국제 태권도 무대로 이어졌다. 이번에 공개된 옛 신문기사와 대학 무도부 자료는 그의 초기 활동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특히 대학 공수도 시절의 경기 성적과 일본 원정 기록은 해외 태권도 지도자로 성장하기 이전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태권도의 세계화는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태권도를 보급하고 발전시킨 수많은 지도자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용대 대사범의 삶 역시 그 역사 속에서 기록하고 후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발자취다.